[거제여행]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 2013년 3월 3일

|

[거제여행]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한시간 넘게 운전끝에 도착한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

도로가에 있어서 찾기는 쉽습니다.



관광 안내소도 있구요~



주차요금은 있어요.. 2,000원 -ㄱ-



자~ 입장하러 가봅니다~ 국기가 펄럭입니다.



첫 관문 !



한바퀴 쭉 둘러보기 좋아요.



3번 광장입니다. ^^



매표소로 가봅니다.



여러 팻말이 잘되어 있어서 돌아다니기 쉽습니다.



어른 4,500원입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분단의 역사.. 우리는 알아야 한다. 민족의 진실을 !

이곳에서 고문이라던가 이런걸 볼거라 생각했는데, 포로수용소의 생활모습들을 볼수가 있습니다.



첫관문~ 탱크전시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나가는데 양옆으로 많이보던 분들이 쭉 서있습니다.



탱크 앞부분이에요. 빵쏘면.. 이 한방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되는걸까요..




포로수용소 디오라마관 (DIORAMA OF POW CAMP)

 국내 최초, 세계 최대의 단일 디오라마관으로서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배치 및 포로의 생활 모습 등을 고증을 거쳐 한눈에 볼 수 있게 재현하였다.

The Unique diorama, the first in Korea and the largest in the world. 

vivifiles the layout of Geoje pow camp and the living aspects of the pows based on the historical research.




들어가는 곳엔 군인들이 총들고 지키고 있습니다.



이곳에 전체적인 모습이 재연되어 있습니다.



앞은 바다, 뒤는 산에 둘러쌓여 있는 곳이에요.

거제의 대부분이 포로수용소로 사용되었다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갖혀있었을까요..



포로로 잡힌 사람들은 이곳에서 새로운 삶에 적응하게 됩니다.



이곳도 사람사는 곳인데.. 최소한의 프라이버시도 없네요. 

응가를 라이브하게 보여줘야 하다니.. ㅠㅅㅠ



여러가지 모습을 재연해놨습니다.



한밤중에 여기와서 보면 정말 무서울것 같아요.. =ㄱ=



이곳저곳, 다양한 군인들이 섞여있습니다. 

미군, 중공군, 남한군, 북한군 이들의 대립도 아주 심했겠죠



38선을 경계로 우리는 세월을 거쳐.. 지금에까지.. 현재 진행형.


 

북한군 남침(Invasion of the south by north korean army)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 북한군은 38선 지역에 걸쳐 대대적인 기습공격을 개시하면서 불법 남침을 감행하였다.

Making a surprise attack all along the 38th parallea at 04:00 on Sunday morning of June 25, 1950.

the North Korean People's Army began invading South Korea unlawfully



전쟁후, 휴전소식을 송해 할아버지가 모스신호를 쳤다고 하시더라구요. 

아직도 생생한 기억을 가지고 있으실 어르신들이 많을거 같습니다.

영화나 드라마도 많이 나오는 편이구요. 

얼마전 고지전 영화보며 이념은 달라도 사람과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가졌는데 

영화를 보고 이곳을 와서인지..  이곳의 정보들이 이해하기가 쉬웠던거 같아요.



죽이고, 죽고.. 윗분들 말한마디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해야했는지



6.25 역사관으로 들어가 봅니다.

History of the Korean War



역사관 안에는 관광객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6.25를 간접으로나, 얘기로 전해들은 세대들이 많은것 같습니다.

전쟁의 시작부터 끝까지 잘 정리해두었습니다.


이곳을 빠져나오니, 조형물이 보입니다.



 

대동강철교(Bridge on the Daedong River)

중공군의 참전으로 국군이 다시 후퇴하게 되자 피난민들은 폭파된 평양의 대동강 철교를 타고, 

자유를 향해 처절하고 험난한 피난의 길에 올랐다.

As the ROK troops retreated again due to the intervention of the Chinese Army in the war, 

the refugees set out on the rough and miserable journey for freedom crossing the destroyed railway bridge on the Daedong River.





경계가 꽤 삼엄합니다. 군부대 초소에서는 저멀리 번호판도 귀신같이 봐야한다더니....

이곳을 지킨 사람도 식겁했겠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신원파악을 하루 종일 해야하다니..


 

M.P 다리 (Military Police Bridge)

1917년에 가설한 연초면 연사리 연사교에 1952년 5월 7일 '돗드' 준장이 친공포로에게 납치되자 

포로수용소 지역 내의 주민 1,116세대를 소개시키고 출입을 통제하던 유엔군 헌병검문소가 설치되었다.

The UN MP checkpoint which controlled entry of deported 1,116 households was established at Yeonsa Bridge(Yeonsa-ri, Yeoncho-myeon. built in 1917) 

when brigadler general Dodd was kidnapped on 7th May 1952 by pro-communist prisoner of war.





다음은 포로들의 생활모습을 알아볼수 있는 포로생활관입니다~



포로생활관 (Living of pow)

당시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포로들은 규정된 통제와 규율속에서도 

제네바 협정에 의거 자율적인 내무생활이 상당부분 허용되었다.

The prisoners in Geoje POW Camp were allowed to self-regulate subastantial part of the life

in the barracks according to the Geneva Convention despite some control and discipline enforced by the rules.

 




포로들의 위생관리



서로 이발도 해주고..



밥도 해주고.. 한국군 전투요원보다 더 잘먹었다니.. 놀랍죠.



드럼통에 물담아서 빨래도 하고 목욕도 하고.

나름의 관리를 아주 잘받았습니다.



 

유적지 체험(Experiencing Remains)

본 유적지 미로체험은 현재 남아있는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유적지 잔해를 이용하여 제작한 것으로 그 역사의 흔적을 찾아 보실 수 있습니다.

The place of maze learning, built with some remains of Geoje POW Camp utilized, will lead you to trace the history.


그리고 이곳은 유적지 체험인데요.  뭔가 서늘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다음은 포로생포관입니다.




포로생포관(Capture of pow)

국군과 유엔군의 강력한 반격과 공세에 밀려 많은 북한군이 투항하였으며 

생포된 포로들은 이후 대부분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이송되었다.

Many of the North Korean Soldiers, having been pressed by the forceful counteroffensitve of the ROK Army and the UN Force,

 had to surrender and most of the captives were sent to Geoje POW Camp.

 



북한군들이 꽤 많이 수용되었겠죠. 영화 웰컴투동막골이 생각이 나요.

마을사람을 중간에 두고, 북한군 남한군이 대립한 가운데.. 스미스가 있던 장면이 생각납니다.



북한군의 항복하고 있는 모습이네요. 죽어가는 동료들을 보며,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포로를 잡았으면 수송을 해야겠죠~!



수송관 앞에도 이렇게 MP들이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군용차도 있는데, 타볼수 있어요. 물론 움직이진 않습니다^^



포로사상대립관. 사상의 대립으로 대거 유혈사태가 일어납니다.


 

포로사상대립관(Experiencing Remains)

포로수용소내의 포로들은 점차 조직화되어 친공포로와 반공포로로 갈라진 채

사상대립 양상을 띄게 되었으며 갈등과 증오가 시작되었다.

The Prisoners in the Camp were gradually organized into the pro-communist group and the anti-communist one causing the bitter ideological confrontation inside. 

and the poignant feud and hatred between them started swaying the Camp.



서로의 생각이 틀리다고 대립하고 싸우고, 증오하고, 죽이기도 하구요.

대규모 폭동도 일으켰다고하니, 그것으로 죽은사람도 꽤 많을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제 야외로 나오니, 공군 비행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여자도 포로??? 여군도 있을거란걸 미처 생각을 못해서 의아해하며 들어가봅니다.


 

여자포로관(Women Prisoners Camp)

남자 위주의 거제도 포로수용소에는 일부 여자포로 등도 생포되어 수용되었으며 그들도 남자포로와 동일한 수용소 생활을 하였다.

Women captives, taken in toe Geoje POW Camp in which the great majority were men, had the daily life in the barracks in the same way as the men prisoners.




어우..귀신나올거 같아요. 기센 여자들만 모여있어서, 싸움나면 작살날듯 하네요. ㅎㄷㄷ



주사기 대박 큽니다 ;; 어우.. 이 언니 인상이.......



누가 등좀 밀어줘.. 란 느낌 ㅎㅎ

이곳에 온 여자포로들 중에 민간인도 포함이 되었다고해요. 

군인과 민간인 전쟁통에 분리가 되었을리 없고.. 

마구잡이로 끌어담아서 민간인도 찍소리 못하고 끌려와서 이렇게 살았다합니다.





포로폭동체험관 (Uprising and crash of pow)

포로수용소에서 이념적 마찰은 날로 증폭되어 급기야 포로간의 처절한 학살과 폭동으로 이어졌다.

생생했던 그 현장을 국내 최초 체험전시관(Dark Ride Show)을 통해 체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After all, a series of miserable slaughter and riot followed the increasingly aggravated friction of the Ideologies. 

Dark Ride Show is waiting for you to experience the feel of the disturbance in the Camp.

 



실물크기의 인형들이 많습니다. 곳곳에서 도망치는 사람 제압하는 사람. 죽이는 사람.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납니다.

소리도 들리고, 움직이기도 합니다. 저도 빨리 발걸음을 옮겨야 살수 있을거 같은 느낌입니다.



진압하는 이사람도 아주 죽을맛이었겠죠. 매일같이 이런사태라니..



철망밖으로 나가고자 용을 씁니다. 손에 피가 나도록.. ㅠㅠ



자꾸 대립하니 사상을 바꾸는 설득을 하기 시작합니다.

포로들의 고민이 실로 어마어마했겠죠. 배신을 하든 안하든 살길은 막막했겠죠.



포로설득관 (Arena of Persuasion)

판문점에서 송환희망 포로의 교환이 신속히 이루어 졌지만 송환을 거부한 포로들에게는 

자유의 몸이 되기 위해서 본국의 집요한 귀환 압박에 강력히 맞서야 할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The prisoner of war from both sides were exchanged rapidly at panmunjeom. 

but the North Korean and Chinese POWs refusing repatriation in the earnest hope of freeman had to go through another deal of their 

government agents' persistent persuasion and press for returning home.

 




여러명이 한명을 데려다 놓고, 단계적으로 접근했을지.. 



따뜻한 대한민국의 봄을 찾아. 이제 자유의품으로. 포로귀환 및 송환


 

포로귀환 및 송환(Return and Repatriation of pow)

휴전과 함께 송환희망포로의 북송이 마무리 되었으며, 

송환을 거부한 포로들은 드디어 석방되어 대한민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The repatriation of the pro-communist POWs had been completed right after the armistice 

and then, the prisoners refusing repatriation were finally released to start new life in the Republic of Korea.





그리고 유적관이 나옵니다. 이곳에서는 영상물과 함께, 이곳의 유적들을 볼수가 있습니다.



자유는 거져 주어지지 않는다.

Freedom is not free.




탑도 세워져 있구요. 계단 오르기 싫어서 올라가진 않았습니다.



전시실에는 당시 사용했던 여러 물품 등 다양히 전시가 되어있습니다.



이해하게 쉽도록 잘 꾸며져 있습니다. 이곳부터는 촬영이 금지에요 ㅎㅎ

잠시 카메라를 내려놓고 슥 둘러봅니다.




다음은 야외에 실제 막사를 구경할 수 있습니다.



테마파크가 조성될 예정이라고.. 개관 했겠는데요.



병원이군요. 십자가.



군복무를 하신분들은 하실얘기 많으시겠죠. 저도 보는 내내 많이 들었습니다.

이때 쓰던걸 아직도 쓴다며.. 발전이 없다느니.. 등등.



아궁에 불때고, 굴뚝에 연기가 솔솔. 밥냄새가 여기까지 나는듯 합니다.



반공포로막사. 오른쪽에 다섯명은 다 사람같이 나오죠.. ㅋㅋ



미싱사도 있고, 이곳에서도 여러 역할을 수행합니다.



매일같이 무료한 생활.. 나름 프리하게 생활한듯 합니다.



멸공.. 공산주의를 멸하자는 뜻이죠. 



이곳은 화장실이에요. 나무에 든것은 똥.덩.어.리.. 웩..

흐미 저 뒤엔.. 소변방사중 //ㅁ// 옴마야..



헐.. 내눈...



아주 분주하네요. 저것이 밥삽.



여기는 국 담당인가봅니다.



보고 지나가는데 외쿡인 아저씨가 저러고.. ㅋㅋㅋㅋㅋㅋㅋ



이 막사.. 진짜사나이에서 본듯도 합니다.



포로막사(Prisoners' Camp)

포로를 수용하기 시작하던 초기 (1951년 1월-3월)에는 천막 막사로 수용하고 내부에는 가마니등을 깔아 추위를 막았다. 

포로의 수가 급증하자 포로 자체 인력으로 아래쪽에 있는 흙벽돌 막사를 건립 수용하였으며, 

이는 포로막사의 변천과정을 재현한 것이다.

At the early period starting to confine the prisoners they were accomdated in the vinyl camp and they protected themselves from cold by laying bales on the floor.

As increasing the number of prisoners, they were let build the mud-plastered camps and confined in them. 

The mud-plastered camps were revived the shift of the prisoner's camps.

 



한겨울에 얼마나 추웠을까요.. ㅎㄷㄷ 밖이나 안이나 별차이 없었을듯..



막사를 다 보고 내려가는 길입니다. 탱크랑 비행기등 있습니다.



장갑차.



다섯명타는데 11톤 ;;



트럭~



헬리콥터 



함포 ;; 소리 대박이었을듯..



올라가면 안됩니다. ㅎㅎ



이곳은.. 포로들이 아주 좋아했을 장소. PX 및 댄스홀~



지금은 유적만 남았지만, 쓱 둘러봅니다.



먹을게 가득하고, 시끌벅적 했을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무도장에서 먹고 즐기고~



낙서를 금한다는데, 낙서는 뭐 이미.. ;;



호오.. 14.5톤 뮤자게 무겁네요. 바퀴 두께만 어마어마..

이렇게 이곳 포로수용소 유적공원도 관람을 끝으로 이번여행도 마감~ ^^



And